'커트 5천원' 미용실…가격만 착한가? 마음은 더 착해요

시민기자 윤혜숙

발행일 2022.11.15. 17:10

수정일 2023.01.05. 18:59

조회 13,581

[우리동네 시민영웅] ⑯ 무료 미용 봉사하는 미용사 이재광 원장
서울 곳곳을 밝히는 ‘우리동네 시민영웅’을 찾아서...
서울 곳곳을 밝히는 ‘우리동네 시민영웅’을 찾아서...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물가에도 불과 5,000원으로 커트를 할 수 있는 착한 가격의 미용실이 있습니다. 이 미용실은 가격만 착한 게 아니라, 미용사의 마음도 너무 착한데요. 고된 업무를 끝내고 마냥 쉬고 싶은 휴일일 텐데도, 휴일엔 무료 미용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재광 원장 이야기입니다. 쌀쌀해진 날씨 속 가슴 훈훈해지는 그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실까요?
사근동 주민센터에서 쿠폰을 받은 취약계층은 이곳에서 무료 미용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윤혜숙
사근동 주민센터에서 쿠폰을 받은 취약계층은 이곳에서 무료 미용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윤혜숙

한양대학교병원 사거리에서 사근동길로 접어들면 행인의 시선을 사로잡는 매장이 하나 있다. 대도시의 야경을 보여 주는 간판부터 외관을 둘러싼 다양한 화분까지, 조용한 주택가 동네와는 다소 이질적으로 보이는 이곳은 '덤앤더머 미용실'이다.

어르신 한 분이 길을 가다 세움간판 앞에서 한참 머물러 있다. 어르신은 ‘사근동 취약계층 무료 이·미용’에 대한 안내문을 보고 있다. 사근동 주민센터에서 쿠폰을 받아서 매월 넷째 주 월요일에 이곳을 방문하면 커트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니 원장이 손님의 머리를 다듬어 주고 있다. 원장과 매니저, 두 사람이 미용실에서 손님을 맞이한다. 매니저가 “예약하신 분인가요?” 라고 묻는다. 아니라고 하자 “저희 미용실은 사전예약제로 운영하고 있어요. 오늘은 예약이 다 차서 다른 날에 방문하셔야겠어요.” 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기자는 원장의 사연을 듣기 위해 미용실에 잠시 머물렀다. 덤앤더머 미용실을 운영하는 이재광 원장은 지난 9월부터 매월 넷째 주 월요일에 무료로 봉사하고 있다. 일주일 중 일요일과 월요일이 휴무인데 한 달에 한 번 휴일을 반납한 채 봉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 사연이 궁금했다.
이재광 원장은 미용인으로서 자신의 재능을 활용해 봉사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한다. ⓒ윤혜숙
이재광 원장은 미용인으로서 자신의 재능을 활용해 봉사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한다. ⓒ윤혜숙

올해 25년차 미용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이재광 원장은 과거 왕십리에서 두 곳의 미용실을 운영할 정도로 찾는 손님들이 많았다. 그런데 왕십리 미용실이 있던 건물의 임대료가 올라서 그곳의 미용실을 접고 이곳 사근동으로 이전했고, 어언 10년이 흘렀다. 

그 후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작년에 같이 일하던 2명의 디자이너들이 미용실을 그만둬야만 했다. 결국 이재광 원장 혼자 남았고, 그러다 보니 사전예약제로 운영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한다. 

코로나19 상황이라 해도 머리카락을 자르거나 염색, 펌 등으로 머리를 손질할 필요성은 줄어들지 않았을 텐데 직원들을 내보내야 했던 이유가 궁금했다. 이 원장은 “미용실은 대부분 오후 9시경에 문을 닫기 때문에 영업시간 제한은 없었어요. 그래서 대다수 사람이 미용실은 코로나19의 타격을 받지 않았을 거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미용실도 코로나19 상황에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라고 말한다. 

사회적 거리두기 규정에 따라 면적당 수용하는 인원 수가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매장 규모에 따라 매장 내 동시간대 최대 수용 인원이 정해졌고, 그래서 동시에 여러 손님을 받을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이재광 원장 혼자 손님들을 받았던 게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미용실 내부 모습 ⓒ윤혜숙
미용실 내부 모습 ⓒ윤혜숙

이재광 원장이 무료봉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 그의 아버지는 장애인이어서 휠체어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지금은 1층에 미용실이 입주해 있지만, 과거엔 2층에 미용실이 있어서 정작 아버지는 아들이 원장으로 근무하는 미용실을 방문해서 머리 손질을 받을 수 없었다. 휠체어를 탄 어르신이 미용실 앞에서 서성이는 모습을 볼 때면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나고 그리웠다고 한다. 

어느 날 TV <인간극장>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모녀가 휴일에 어르신들에게 미용 봉사하는 것을 시청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가진 미용 기술로 주위 어르신들에게 봉사할 수 있겠단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올해 추석 연휴를 앞두고 한 아주머니가 남편의 머리 손질을 해 달라면서 출장 미용을 간곡히 부탁했다. 출장 미용을 하지 않건만 아주머니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아주머니를 따라 집을 방문하니 몸을 가누기 힘든 아저씨가 누워 있었다. 출장 미용을 마치고 그 집을 나오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손님의 머리를 손질하고 있다. ⓒ이재광
손님의 머리를 손질하고 있다. ⓒ이재광

이재광 원장은 이제는 미룰 수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월 1회 휴일에 봉사하기로 했다.

그런데 주민들에게 알리는 게 문제였다. 사근동 주민센터를 방문해서 무료 봉사의 취지를 설명했다. 주민센터와 협의해 관내 취약계층에게 쿠폰을 제공하면 쿠폰을 소지한 분들을 대상으로 예약 없이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9월과 10월 2회 봉사하는 동안 하루에 7명 정도의 어르신이 방문했다.

이재광 원장은 주민센터에서 배포하는 쿠폰을 소지한 분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보다 쿠폰 소지 여부와 상관없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사근동에 한정하지 않고 성동구 관내로 서비스 대상을 확대해서 가급적 많은 분이 무료 미용서비스를 받으실 수 있게 할 계획 이라고 한다.

이재광 원장은 어릴 적 드나들었던 이발소가 사라지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 했다. 지금도 낯선 동네 골목길을 걷다가 이발소를 알리는 삼색등을 보면 마음이 설렌다고 했다. 남성 전용 미용실은 여럿 있지만, 이발소와 비교해 가격이 비싸다.

그러고 보니 입구에 안내문이 붙어 있다. 커트가 5,000원이라는 것을 알리는 내용이다. 최근 물가가 많이 올랐지만 덤앤더머 미용실은 5,000원으로 커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원장은 과거에 동네 골목길에 흔히 볼 수 있었던, 동네 사랑방처럼 어르신들이 마음 편히 드나드는 그런 이발소를 운영해 보는 게 목표라고 한다.
커트 5,000원의 착한 가격으로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다. ⓒ윤혜숙
커트 5,000원의 착한 가격으로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다. ⓒ윤혜숙

인터뷰 중간에 예약한 손님들이 계속 밀려든다. 마침 이곳을 방문한 조경석(65세) 어르신은 “딸이 이곳 단골이어서 온 가족이 단골로 이용하게 되었어요. 여긴 무엇보다 가격이 착해요. 남성 커트가 단돈 5,000원인 곳은 서울 시내 어디에서든 찾아보기 어려워요. 그렇다고 원장님의 커트 실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에요.” 라고 찬사를 보낸다. 
 
원장이 봉사하는 날에 맞춰 김신숙 매니저도 미용실에 출근해서 어르신들이 마실 따뜻한 차를 준비하고 있다. 김신숙 매니저는 밤을 한 움큼 손에 쥐고 오신 할아버지가 생각난다고 했다. “내가 줄 건 이것밖에 없어요.” 라는 할아버지의 말씀에 마음이 뭉클했다고 한다. 이곳을 방문하는 어르신들을 대하면 우리의 부모님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봉사하는 날에 어르신들이 여럿 찾아와 주셨어요. 그런 어르신을 대하면서 저도 노후에 이런 봉사를 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려면 저도 원장님처럼 누군가를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야겠지요.” 김신숙 매니저는 이재광 원장이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봉사에 함께하고 있다. 선한 영향력의 힘일 것이다.
동네 사랑방처럼 누구나 마음 편히 드나들 수 있는 정겨운 미용실을 꿈꾸고 있다. ⓒ윤혜숙
동네 사랑방처럼 누구나 마음 편히 드나들 수 있는 정겨운 미용실을 꿈꾸고 있다. ⓒ윤혜숙

이재광 원장은 많은 분이 이곳을 방문해서 미용 서비스를 받길 원한다고 했다. “제가 휴일을 할애해서 봉사하는 만큼 많은 분이 찾아주시길 바랍니다. 제가 앉아서 쉴 틈이 없어도 좋습니다.”  

“지금과 같은 환절기 때 탈모가 많이 생깁니다. 뜨거운 물이 머리카락에 닿으면 머리카락이 건조해질 수 있으니 가급적 찬물이나 미온수로 머리를 감는 게 좋아요.” 머리카락을 관리하는 팁을 알려 달라고 했더니 이재광 원장이 조언한다. 그리고 “물기가 젖은 상태에서 드라이기를 사용하면 드라이기 온도가 더 상승합니다. 드라이기를 사용한다면 냉풍과 온풍을 번갈아 가면서 머리를 말리면 머리카락의 손상을 방지할 수 있어요.” 라고 덧붙인다. 

미용인으로서 자신의 재능을 활용해서 봉사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이재광 원장을 보면서 그의 오랜 꿈이 이루어지길 바라 본다. 각자 자신이 가진 재능이 있기 마련이다. 이재광 원장처럼 자신의 재능을 발휘해서 봉사를 한다면 우리 사회가 더욱 훈훈해질 거란 확신이 든다. 가뜩이나 기온이 내려가 움츠러드는 날씨에 마음이 한결 따스해지는 인터뷰였다.  

덤앤더머 미용실

○ 위치: 서울시 성동구 사근동길 25-1 1층
○ 교통: 지하철 2·5호선·경의중앙선·수인분당선 왕십리역 6번 출구에서 541m
○ 영업시간: 화~토 11:00 ~ 21:00 (일·월요일 휴무)
  ※ 매월 넷째 주 월요일 무료봉사
○ 문의: 02-2292-9700  

시민기자 윤혜숙

시와 에세이를 쓰는 작가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다양한 현장의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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