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고 행정기관 '의정부 터'를 거닐다!

시민기자 노혜연

발행일 2021.06.28. 14:35

수정일 2021.06.28. 14:37

조회 1,497

광화문 앞을 가로막고 있었던 답답한 가림막이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광화문을 걷다가 가림막의 정체를 항상 궁금해하던 찰나였다. 그곳의 정체는 바로 의정부 유적 현장이다. 서울시가 지난 21일부터 23일까지 3일간 의정부 유적 현장을 공개했다. 2013년 의정부 터를 확인하고 7년여에 걸친 학술연구와 발굴조사를 진행한 서울시가 조사를 마무리하고 의정부지를 활용하기 위한 본격적인 준비에 앞서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의정부지 유적을 공개한 것이다.

‘의정부지(議政府址)’는 지난해 9월에는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도 지정되었다. 의정부는 영의정ㆍ좌의정ㆍ우의정 등이 국왕을 보좌하면서 국가 정사를 총괄하던 조선 시대 최고 행정기관으로, 의정부 터가 가진 역사ㆍ문화적 가치는 그만큼 크다. 임진왜란 때 화재로 건물이 훼손됐다가 1865년 흥선대원군 때 경복궁과 함께 재건됐지만, 이후 일제강점기와 산업화ㆍ도시화를 거치면서 본연의 모습을 잃었다.

필자는 22일 화요일 행사에 참여했다. 의정부지에는 오랜 시간 가림막이 세워졌기에 그 안의 모습이 많이 궁금했던 터라 이번 행사가 더욱 기대됐다. ‘의정부지 유적 공개 프로그램’은 평일 오전에 열렸음에도 사전 신청이 모두 마감됐는데, 이날 참여자들 나이ㆍ성별이 다양해 의정부지에 대한 시민들의 높은 관심을 느낄 수 있었다. 행사는 명단 확인 및 발열 체크 등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절차를 거친 뒤 10시 30분에 시작됐다.
궁궐전문가 홍순민 명지대 교수가 지난 22일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열린 '의정부지 유적 공개' 프로그램에서 광화문 일대 유적과 역사를 해설하고 있다.
궁궐전문가 홍순민 명지대 교수가 지난 22일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열린 '의정부지 유적 공개' 프로그램에서 광화문 일대 유적과 역사를 해설하고 있다. ⓒ노혜연
광화문 사거리에는 고종이 왕이 된 지 40주년과 그의 나이 51세가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고종 어극 40년 칭경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고종이 왕이 된 지 40주년과 그의 나이 51세가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고종 어극 40년 칭경기념비’ ⓒ노혜연
홍순민 명지대 교수가 ‘고종 어극 40년 칭경기념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홍순민 명지대 교수가 ‘고종 어극 40년 칭경기념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노혜연

프로그램은 광화문 교보문고 건물 앞에서 시작해 먼저 ‘고종 어극 40년 칭경기념비’를 살펴봤다. 많은 이들이 모르고 지나치는 교보문고 건물 옆 광화문 사거리에 세워진 고종 어극 40년 칭경기념비는 고종이 왕이 된지 40주년과 그의 나이 51세에 ‘기로소’에 들어간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참고로 기로소(耆老所)는 정2품 이상의 문관 중 70세 이상 된 사람을 우대하는 제도다. 그런데 왕들이 오래 살지 못해 기로소에 들어가는 이가 없자, 숙종과 영조 등이 60세를 바라보는 나이라 하여 미리 앞당겨 들어간 것을 본받아 고종은 신하들의 건의에 따라 51세에 들어가게 됐다.

이 비석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비각은 ‘기념비전’이다. 기념비전의 편액은 조선의 마지막 임금인 순종이 황태자 시절 쓴 것이다. 기념비전 앞에 있는 ‘만세문’에서도 순종의 글씨를 찾아볼 수 있다.

1392년 건국된 조선은 1349년부터 한양을 도읍지로 정하고, 종묘ㆍ사직을 지은 다음, 전조후시(前朝後市), 동문서무(東文西武) 이념에 따라 경복궁 앞길에 관청가, 종로 일대에는 시전을 조성했다.

홍순민 교수는 “세종로를 육조거리라 일컫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경복궁과 광화문의 위상을 생각했을 때 경복궁 앞길(경복궁 전로), 혹은 광화문 앞길(광화문 전로)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라고 설명했다.
홍순민 명지대 교수가 ‘중학천 석축 유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홍순민 명지대 교수가 ‘중학천 석축 유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노혜연
'중학천 석축 유구'의 하부 3단은 조선 중후기 때 석축을 그대로 살려서 전시하고 있다.
'중학천 석축 유구'의 하부 3단은 조선 중후기 때 석축이다. ⓒ노혜연

다음으로 종로 D타워 옆에 있는 ‘중학천 석축 유구’로 향했다. 중학천은 삼청동 백악(북악산) 계곡에서 발원해 중학동을 거쳐 청계천으로 합류하는 하천으로서, 삼청동천이라고도 불렸다. ‘중학’은 조선 시대 중등 교육기관인 중부학당, 즉 중학이 있던 데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전시된 석축 7단 중 하부 3단은 조선 중후기 때 돌이라고 하니 그동안 이곳의 가치를 못 알아보고 지나갔던 날들을 반성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옥상에서 본 경복궁과 광화문, 의정부지 일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옥상에서 본 경복궁과 광화문, 의정부지 일대 ⓒ노혜연
홍순민 명지대 교수가 인왕산과 백악(북악산)을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홍순민 명지대 교수가 인왕산과 백악(북악산)을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노혜연
1890년 모리스 쿠랑 촬영사진(위)/‘광화문외제관아실측평면도’ 상 주요 관아 위치 및 구조(아래)
1890년 모리스 쿠랑 촬영사진(위)/‘광화문외제관아실측평면도’ 상 주요 관아 위치 및 구조(아래) ⓒ서울시

“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8층 옥상에 올라가자 경복궁과 더불어 백악(북악산)과 청와대, 광화문 일대가 훤히 보였다. 여기저기서 감탄사와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옥상에서 내려다본 의정부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옥상에서 내려다본 의정부지 ⓒ노혜연
의정부 유적 전체 유구 발굴현황 (일제강점기에는 의정부 터에 경기도청이 자리했다.)
의정부 유적 전체 유구 발굴현황 (일제강점기에는 의정부 터에 경기도청이 자리했다.) ⓒ서울시
홍순민 명지대 교수가 조선 시대 주요 관청의 배치 변화를 설명하고 있다.
홍순민 명지대 교수가 조선 시대 주요 관청의 배치 변화를 설명하고 있다. ⓒ노혜연

이곳에선 의정부와 삼군부, 6조 등 사료로만 확인한 조선 시대 주요 관청의 위치를 세종로 위에서 비교해보면서 명확한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의정부지 발굴 조사를 담당한 서울역사박물관 조치욱 학예사가 의정부 터 학술 연구와 발굴 조사 결과를 이야기하고 있다.
의정부지 발굴 조사를 담당한 서울역사박물관 조치욱 학예사가 의정부 터 학술 연구와 발굴 조사 결과를 이야기하고 있다. ⓒ노혜연
석조문화재 보존처리 과정에 대해 설명하는 김영택 문화재보존처리전문가
석조문화재 보존처리 과정에 대해 설명하는 김영택 문화재보존처리전문가 ⓒ노혜연
의정부지 유적 공개 프로그램에 참여한 시민들이 의정부 터로 들어서고 있다.
의정부지 유적 공개 프로그램에 참여한 시민들이 의정부 터로 들어서고 있다. ⓒ노혜연

이어서 이번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 의정부지 유적 현장에 들어섰다. 현장에서는 조치욱 학예사와 김영택 문화재보존처리전문가를 통해 의정부 터 발굴조사 결과와 유구 보존처리 과정 해설을 들을 수 있었다.
조치욱 학예사 뒤로 보이는 석재는 의정부 일부 건물의 기단석으로, 우리가 의정부를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조치욱 학예사 뒤로 보이는 석재는 의정부 일부 건물의 기단석이다. ⓒ노혜연
‘광화문외제관아실측평면도’에 표기한 의정부의 건물 배치도 ⓒ서울시
‘광화문외제관아실측평면도’에 표기한 의정부의 건물 배치도 ⓒ서울시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이 소실되자 육조를 비롯한 주요 관청들은 국왕이 거주하는 창덕궁과 경희궁 앞에 임시청사를 만들었다. 전쟁 후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비변사는 의정부를 비롯한 여러 관서의 기능을 능가하며 국가 행정의 중심이 됐다. 이후 흥선대원군이 비변사를 의정부로 흡수, 의정부의 기능을 부활시켰고, 1865년부터 의정부와 경복궁 앞 관청가를 재정비하고 경복궁을 재건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의정부에 경기도청과 치안본부가 들어서는 등 가슴 아픈 변화를 겪으며 의정부는 모습을 잃었다.

이렇듯 의정부 건물이 모두 없어졌기 때문에 일부 건물의 기초 부분만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료 속 의정부 건물의 배치와 규모를 비교하면서 보니 역사의 한가운데 서 있는 듯 감회가 새로웠다.
의정부 터에서 발견된 4.4m 가량 깊이의 우물에선 일제강점기 때 쓰인 그릇 유물들이 발굴됐다.
의정부 터에서 발견된 4.4m 가량 깊이의 우물에선 일제강점기 때 쓰인 그릇 유물들이 발굴됐다. ⓒ노혜연

현장에선 4.4m 가량 깊이의 우물도 볼 수 있었다. 민가에서 쓰인 우물과는 양식 및 석재의 크기ㆍ규모가 달라 조선 시대 관청의 위상을 느낄 수 있었다. 조치욱 학예사는 이곳에서 일제강점기 때 쓰인 그릇 유물들이 많이 발견됐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김영택 문화재보존처리전문가가 문화재보존처리 과정에서 쓰이는 도구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김영택 문화재보존처리전문가가 문화재보존처리 과정에서 쓰이는 도구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노혜연
실제 문화재보존처리에 쓰이는 기기들
실제 문화재 보존처리에 쓰이는 기기들 ⓒ노혜연

석조문화재는 오랜 시간 야외에 노출되면 열화ㆍ풍화작용을 겪게 돼 훼손을 입는다. 특히 균열이 생겨 석조문화재 내부로 수분이 들어가게 되면 기온에 따라 수축과 팽창을 하면서 문화재 손상을 키운다고 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문화재보존과학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균열까지 접합하고 보강하는 일을 한다.
평소 보기 어려운 문화재조사 시범에 시민 참여자들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집중하고 있다.
평소 보기 어려운 문화재 조사 시범에 시민 참여자들이 집중하고 있다. ⓒ노혜연
초음파장비는 석재문화재 속 눈에 보이지 않는 균열을 찾는 데 쓰인다.
초음파장비는 석재문화재 속 눈에 보이지 않는 균열을 찾는 데 쓰인다. ⓒ노혜연
초음파장비는 문화재 내부에 균열이 많을수록 발신기가 주파수를 수신기에 보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원리를 이용해 문화재 내부 조사를 하는 도구이다.
초음파장비는 문화재 내부에 균열이 많을수록 발신기가 주파수를 수신기에 보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원리를 이용해 문화재 내부 조사를 하는 도구이다. ⓒ노혜연

특별히 이날 프로그램에서는 일반 시민들이 쉽게 보기 힘든 석조문화재 보존처리에 사용되는 도구와 유적의 상태를 파악하는 방법도 일부 공개됐다. 초음파장비를 활용한 문화재 조사 시범에 시민들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집중했다. 초음파장비는 문화재 내부에 균열이 많으면 발신기가 주파수를 수신기에 보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원리를 이용해 문화재 내부 조사를 하는 것이다.

약 1시간 30분 동안 광화문과 중학천 등 주변 입지, 광화문 앞길에 얽힌 서울 도심 속 역사부터 의정부 터 발굴조사 과정, 문화재 보존처리 과정까지 배운 흥미로웠던 시간이었다. 서울에 태어나 살면서도 무심했던 도심 속 역사 유적과 옛 지명에 새롭게 깨닫고, 평소 보기 어려운 유구 발굴 현장까지 보고 배우면서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한편, 앞으로 서울시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유적을 안전하게 보존하는 시설을 세우고, 역사문화 공간을 조성해 시민을 위한 의정부지 역사공원을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차근차근 시민들 품으로 돌아올 준비를 하는 의정부지에 기대가 크다. 오랜 시간 서울의 중심을 갑갑하게 막고 있던 가림막을 거두고 역사문화가 살아 숨 쉬는 현장이 될 의정부지를 상상해본다.

시민기자 노혜연

시민 가까이서 옹골찬 기사를 전하는 서울시민기자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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