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처럼 내린 마릴린 먼로, 1954년 그 겨울의 이야기

서해성 작가

발행일 2022.12.02. 15:58

수정일 2022.12.02. 16:13

조회 6,754

서해성 작가가 들려주는 '흐린 사진 속의 그때' (5) 서울, 겨울이야기: 야상과 파카, 그리고 마릴린 먼로
서해성 작가가 들려주는 흐린 사진 속의 그때
마릴린 먼로
그 겨울 끝자락을 밟고 
한 여인이 여의도 비행장에 내려섰다.

아메리카 애국 미인이 출현하는 순간

그 겨울 끝자락을 밟고 한 여인이 여의도 비행장에 내려섰다. 오사카 이타미 공항(Itami Air Force Base)에서 그를 태우고 온 수송기는 C-46 코만도였다. 여인은 사지 군복 단추 한 개를 푼 채 탑승대에서 상체를 앞쪽으로 기울였다.

왼손으로 항공잠바를 어깨 뒤로 넘긴 채 오른손으로는 탑승대 난간을 살짝 잡고 있었다. 신발은 하이힐이 아니라 갈색 미 해병대 상륙용 전투화였다. 누가 봐도 나들이 가는 한가한 여군 차림이었다.

갈색 머리를 금발로 물들인 여인은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주변에는 모두 군인들뿐이었다. 상당수는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여인은 오직 한 사람이었지만 도무지 경계하는 태도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당당했다.

1954년 2월 16일 정오 무렵이었다. 신혼여행 도중에 일정을 바꿔 급히 서울로 온 새색시였다. 본명 노마 진(Norma Jeane), 배우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였다.

그는 공연 없이 떠나버려 아쉬워하는 여의도 비행장 군인들을 뒤로하고 곧장 헬기로 미 해병 제1사단 주둔지 연병장으로 날아갔다. 부대 상공을 낮게 선회하는 헬기 밖으로 왼쪽 다리를 내민 채 먼로는 손을 흔들었다. 훈련받은 군인들도 쉽게 하기 어려운 도발적 행동이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여공으로 드론 조립공장에 다닌 적이 있었다. 실은 헬기 안에서 병사 두 명이 엎드린 채로 먼로의 다리를 붙잡고 있었다.

이윽고 가히 여신이라도 강림하는 듯 거친 연병장에 내려선 그는 무대로 이동하여 공연을 시작했다. 그날 눈이 내렸다. 공연 타이틀은 ‘Anything Goes(뭐든지 허용된다)’였다. 이는 먼로와 동행한 밴드 이름이기도 했다. 원래는 1934년에 나온 브로드웨이 뮤지컬 제목이었다. 먼로는 먼저 자신이 주연한 영화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Gentlemen Prefer Blondes)>에 나오는 ‘Diamonds Are a Girl’s Best Friend’를 불렀다. 이어서 조지 거쉰(George Gershwin)‘Do It Again’을 흥얼거렸을 때는 거의 폭동이 일어날 조짐을 보였다.

전장의 피로, 야전생활에 지쳐 있던 미군 장병들은 환호했다기보다 경기를 일으켰다. 아메리카 애국 미인이 출현하는 순간이었다. 그를 따라온 기자들은 아이젠 하워가 한국전쟁 전선을 방문했을 때보다 많았다. 장병들이 먼로 사진을 찍느라 한국 전역의 미 육군 PX에 있던 모든 필름이 매진되었다.

한반도에 처음 생긴 비행장

정전협정이 체결되었지만, 여의도 비행장은 여전히 군인들이 사용하고 있었다. 한반도에 처음 생긴 비행장이었다. 일제가 건설할 때 첫 이름은 경성비행장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기지 이름은 미 공군 6167기지(6167th Air Base)*였다. 6167부대는 필리핀 클라크 미 극동공군 기지에 있는 581 항공보급과 통신비행단에서 전선으로 파견 나온 심리전 중대였다. 전쟁 때 비행장 이름은 K-16(Seoul City Airbase)이었다.
※ 6167th Air Base는 50년 10월 6153rd Air Base Unit으로 출범

참고로 부산 수영비행장은 K-1, 김포비행장은 K-14, 오산은 K-55, 광주는 K-57이었다. 미 공군은 북한지역을 포함하여 57개 비행장을 운용하거나 계획을 세우면서 한반도 활주로에 일련번호를 붙였다.

6167부대는 침투능력이 좋은 쌍발 중형 폭격기 B-26 인베이더, 수송기 C-46, C-47과 수상 침투·철수를 지원하는 수상 비행기 구루먼 알바트로스(HU-16 Albatross) 2대, 헬기 4대를 운용하고 있었다. 이 항공기들을 이용하여 정찰과 정보수집, 전단투하, 침투작전 따위를 수행했다.

미 공군박물관에 가면 이들이 작전을 수행하면서 수기로 작성해놓은 비행과 출격 일지를 상세히 볼 수 있다. 이를 소티(Sortie)라고 한다. 먼로가 여의도를 떠날 때 타고 간 건 K-16에 있던 시코르스키(Sikorsky H-19 Chickasaw) 헬기 중 한 대였다.
장병들 속 마릴린 먼로

한국 날씨 때문에 생긴 야전복

사진에 나오는 먼로 주위에 서 있는 군인들 대부분은 ‘야상’을 입고 있다. ‘야상’이란 전투복(작업복) 위에 덧입는 한국군 방한복 상의 외피의 정식 명칭으로, 방상외피, 야전상의 따위로 부른다. 야상은 줄임말이다. 영어로는 야전상의(Field Jacket)다.

사진 속 대부분 장병들이 입고 있는 야상은 M-1951 Field Jacket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군들에게 지급되었던 M-1943 필드 자켓을 발전시킨 것이었다. 미군은 꿰는 단추를 떼어내고 똑딱이 단추 등도 바꾸었지만, 알다시피 1·4 후퇴에서 한반도 강추위에 질렸던지라 무엇보다 야전상의의 방한기능을 높였다.

숫자는 연도를 뜻한다. 천은 사지다. 한국전쟁 이후 청년들이 검게 물들여서 외투로 입던 그 사지옷이다. 서지(serge)를 한국인들이 이렇게 발음했던 것이다. 서지라는 말은 비단과 모직을 섞어서 짠 천을 부르는 이탈리아어 ‘sergea’에서 왔다.
먼로가 걸친 잠바는 
새파란 남색 B-15C다. 

몰려든 장병들 사이에서 겨우 걷고 있는 먼로는 항공잠바를 어깨에 걸치고 있다. 여인은 지금 막 비행기에서 내려왔다는 뜻으로 잠바를 벗어들고 있다가 등을 덮은 참이었다.

미 공수부대원 방한복이라서 점퍼(jumper) 슈트라고 부르는 군복이었다. 이를 일본에서 ‘잠파(ジャンパー)’라고 부르던 것이 한국에서 ‘잠바’가 되었다. 침투를 위해 비행하는 동안 무섭게 파고드는 바람을 막기 위해 목과 소매를 단단히 조이고 허리 품이 달라붙고 앞을 지퍼로 채우는 옷이었다.

먼로가 걸친 잠바는 새파란 남색 B-15C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전투기나 폭격기 승무원들이 입던 B-15 나일론 자켓을 개량한 것이었다. B-15C 또한 한국전쟁 중에 나온 잠바다. 60, 70년대 한국에 널리 유행한 빗물이 미끄러져 내리는 반짝거리는 유광천을 사용한 잠바는 미 공군 폭격기 조종사들이 입던 MA-1 bomber jacket이다. 둘 다 목깃에 털을 덧붙여 탈부착할 수 있다.

런던을 휩쓸었던 피시 테일 파커

전쟁이 일어난 한국 날씨 때문에 생긴 또 다른 야전복이 피시 테일(M-1951 Fishtail Parka)이다. 복잡하게 생각할 건 없다. 미군 전투복으로 1951년도에 생산했다는 뜻이다. 피시 테일 파커가 모든 군인에게 보급될 무렵에는 전쟁이 끝났다.

Fishtail, 물고기 꼬리란 대체 무슨 말일까. 이 야전복은 허리와 밑단에 조임끈이 달려 있다. 미군은 1948년에 이 야전복을 생산했는데 한국전쟁 시기에 모자(후드)와 견장을 달 수 있는 어깨끈이 생겼다. 천도 바뀌었다. 정식명칭이 M-1951 Cold Weather Parka인 것만 봐도 생산 이유를 알 수 있다. 한국의 추위와 습기를 막기 위한 야전용 외투였다.

이 야상은 뒷부분 아래쪽 가운데가 가오리 모양으로 두 갈래로 갈라져 있고 거기에 끈이 달려 있다. 끈을 돌려서 다리 사이로 따로 묶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추위를 막아보려는 보온조치였다. 끈이 너덜거리는 생김새를 보고 GI(미군)들이 물고기 꼬리(Fishtail)라고 한 것이다.

파카(Parka)는 북방 유목민 네네츠(Nenets) 종족 언어에서 파생한 말로 ‘동물 가죽’을 뜻한다. 눈과 얼음 사이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입는 가죽옷에서 유래했다. 한국인들이 한동안 외투를 그냥 ‘파카’를 입는다고 한 것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피시 테일 파커는 유럽으로 건너가 런던을 말 그대로 휩쓸었다. 50년대 후반, 60년대 초반 서브 컬처를 대표하는 Mod들은 이탈리아제 스쿠터를 타고 시내를 내달렸다. Mod란 modern을 뜻하는 하위 속어였다.

그들이 타고 다니는 스쿠터 이름은 베스파(Vespa, 말벌)였다. 영화 ‘로마의 휴일(Roman Holiday)’에서 여주인공(오드리 헵번)이 타고 다니던 제품이다.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이 지원한 마샬플랜 비용으로 제작되었다. 런던 청년들은 스쿠터를 타고 달리는 동안 바람을 막기 위해 거의 한결같이 한반도 날씨 때문에 탄생한 피시 테일을 입었다.
마릴린 먼로는 
추운 날씨를 아랑곳하지 않고 
내내 어깨가 드러나는 
반짝이 이브닝 드레스 차림으로 공연했다.

10만명 가까운 군인 앞에서 공연한 먼로

마릴린 먼로는 오사카 군인병원에서 2백여명 군인 환자들 앞에서 먼저 리허설을 했다. 당연히 한국 공연 때와 옷차림은 거의 같았다. 15일에는 오사카 군인병원에서 부상병들과 함께 음식을 들었다. 겨울인데도 황열병과 콜레라 예방주사를 맞은 뒤 그는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미 극동사령부가 생각했을 때 휴전 직후 한반도는 그러한 곳이었다.

먼로는 나흘 동안 한국 땅에 머물렀다. 그는 신혼여행 겸 일본 야구 지도를 위해 남편 조 디마지오와 동행한 동료 야구선수인 ‘왼손잡이 오둘(Lefty O’Doul)’의 부인 진 오둘과 함께 한국에 왔다. 오둘은 먼로와 디마지오의 혼례에 참석한 6명 중 하나일 정도로 사이가 가까웠다.

먼로는 16일 미 해병 제1사단을 방문했다. 이어서 동두천 미 보병 제7사단(사단장 Lionel C. McGarr 중장), 미 보병 제3사단, 앞줄에 앉기 위해 아침부터 모포를 둘러쓰고 7시간을 기다렸다는 철원 미 보병 제45사단 공연, 인제 미 보병 제2사단 공연과 미 제10군단(제2사단은 제10군단 예하) 사령부 본부중대 배식, 또 6147부대가 관리하고 있던 춘천 비행장(K-47)을 찾아갔다.

미 보병 제7사단 공연 때는 조명이 꺼졌다. 제25사단 야구선수 2명과 기념사진도 찍었다. 19일 대구 동촌비행장(K-2) 공연에는 미군, 네덜란드군, 태국군 장병들이 공연을 관람했다. 포항 오천비행장(포항공항 K-3) 뒤 인덕산 비탈 무대와 부상군인 위문까지 10만명 가까운 군인들을 상대로 먼로는 10회 순회공연을 거듭했다. 한국에 주둔 중인 미군은 당시 225,590명이었다.

노래한 곡목에는 ‘Somebody Loves Me’, ‘Bye Bye Baby’도 들어 있었다. 마릴린 먼로는 추운 날씨를 아랑곳하지 않고 내내 어깨가 드러나는 반짝이 이브닝 드레스 차림으로 공연했다. 서울을 기준으로 아침 최저 기온은 2월 16일 영상 0.6도, 17일 영하 2도, 18일 영하 6.5도, 19일 영하 8.1도였다.

마릴린 먼로의 진짜 매력은 한국에서 가장 빛났다

여의도 공항에 착륙한 뒤 걷고 있는 사진을 보면 바닥은 진창이었다. 공연을 위한 제대로 된 조명 따위는 상상키 어려웠다. 그래도 그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먼로는 자신을 환영하기 위해 부대에서 만든 커다란 케이크를 대검으로 썰다가 상처가 생기기도 했지만, 그 또한 개의치 않았다. 현장 지휘관이 황급히 단속해서 당시에는 보도가 되질 않았다.

어쩌면 마릴린 먼로의 진짜 매력은 한국에서 가장 빛났다. 강행군을 거듭한 먼로는 주한미군 공연 일정에 지쳤고, 남편이 기다리고 있는 일본으로 돌아갔을 때 폐렴으로 쓰러졌다. 그는 회억한 적이 있었다. 한국 공연이 내 마음 속에서 스스로 진정한 스타가 된 내 인생 최고의 공연이었다고.

병사들은 그보다 더 강렬하게 응답했다. 먼로는 페니실린 이후 최고의 치료제였다. 
“The Greatest Cure since Penicillin”. 
정확하게는 서울로 떠나기 전 일본에서 마릴린 먼로가 군인병원을 찾아가 위문한 부상병들 사이에서 퍼진 말이었다. 이들 또한 대부분 한국전 참전병들이었다.
먼로는 
페니실린 이후 최고의 치료제였다.
The Greatest Cure since Penicillin

어쨌든 전쟁은 끝났고 미제 사지 군복은 바깥세상으로 밀려 나왔다. 새벽에 섰다가 아침 녘에 사라지는 도깨비시장은 전쟁통에 출현했다. 수탉이 울기 전에 문을 닫는다는 귀신시장, 도깨비시장은 청나라 말기 잦은 외침으로 어수선한 중국 땅에서 처음 나온 말이다. 야상을 비롯한 미제 군복과 장비는 주로 이 시장을 통해 팔려나갔다.

피시 테일처럼 한국전쟁 중인 1951년 처음 생산된 일반 야상은 오래도록 가난한 청년들 사이에 널리 유행했다. 외투를 사서 입을 형편이 못 되었던 터였다. 장사치들은 그걸 검게 물들여서 팔았다. 영화 ‘아름다운 시절’(감독 이광모)에 강변에서 군복을 물들이는 장면이 나온다. 검은 사지 외투를 입은 청년들이 전후 대학과 명동 일대의 다방과 가난한 거리를 서성거렸다. 마릴린은 그 위로 눈발처럼 잠깐 흩날리고는 가뭇없이 날아갔다.

마릴린 먼로 한국일정은 날짜와 장소가 조금 불일치할 수도 있다. 서로 어긋나는 미군 자료 등을 맞춰보고 해서 수습한 터다. 먼로 일행이 여의도가 아닌 다른 공항에 처음 도착했다는 자료가 여럿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애초에는 1954년 2월16일 10시 반경에 도착할 계획이었는데 일본에서 출발이 늦어 정오께 여의도 비행장에 착륙했다. 먼로 방문 기록이 한국 관련기관에 거의 없는 건 그의 공연이 전적으로 주한미군만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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