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연고라도 마지막 길 외롭지 않게…공영장례 어떻게 이뤄질까?

시민기자 정지영

발행일 2024.04.19. 15:00

수정일 2024.04.19. 15:59

조회 1,690

서울시립승화원 입구. 운구 차량들이 줄지어 있다. ⓒ정지영javascript:;
서울시립승화원 입구. 운구 차량들이 줄지어 있다. ⓒ정지영

아직 벚꽃이 피지 않은 때, 추위가 다 가시지 않은 어느 날, 고양시 덕양구에 위치한 서울시립승화원의 언덕길을 올랐다. 경사를 오르는 다리도 무겁지만, 이 길을 오르는 유족들의 마음도 무거울 터였다.

이 날 참석할 장례식에서 대리 상주 및 조사 낭독을 하기로 되어 있어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특이한 점이라고 하면, 장례식을 지낼 고인과 전혀 일면식이 없다는 점이었다.
공영장례식이 열리는 ‘그리다’ 빈소는 서울시립승화원 2층에서 찾을 수 있다. ⓒ정지영
공영장례식이 열리는 ‘그리다’ 빈소는 서울시립승화원 2층에서 찾을 수 있다. ⓒ정지영

간혹 구청 등에 방문하면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공고가 게시판에 붙어 있다. 이렇게나 사람이 넘쳐나는 도시에서 ‘우리 동네의 누군가가 무연고로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으면 절로 마음이 숙연해진다. 요즘에는 고독사 관련 뉴스에 어르신만이 아니라 청년들의 안타까운 사연까지 종종 등장해 원룸 밀집 지역에 사는 1인가구 입장에서 마냥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분들의 마지막 가시는 길은 어떨까 생각하던 차에 1365자원봉사 포털에서 공영장례 자원봉사자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다.

참석이 가능한 날짜를 선택하고 봉사 신청한 뒤 얼마나 흘렀을까. 신청한 날에 열리는 장례식이 있다는 안내 문자를 받았다. 그리고 봉사 담당자(나눔과 나눔 소속)의 안내 전화가 왔다. 친절한 목소리로 건네는 질문이 사뭇 무거웠다.

“장례 과정에서 화장 후이지만 고인의 유골 등을 보게 될 수 있는데 괜찮으실까요?”

죽음의 무게와 고인에 대한 존중이 확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봉사에 좀 더 진지한 마음으로 임하게 된 기자는 무채색 계열의 옷을 방 한구석에 미리 잘 개어 두었다.
그리다 빈소 옆에 ‘서울특별시’가 새겨진 근조 깃발이 세워져 있다. ⓒ정지영
그리다 빈소 옆에 ‘서울특별시’가 새겨진 근조 깃발이 세워져 있다. ⓒ정지영

빈소에는 기자와 같은 봉사자는 물론이고, 사전에 연락을 나눴던 봉사 담당자와 고인의 지인, 장례 전문가와 고인을 위해 장례 염불을 도와주실 봉사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날의 고인은 두 분으로, 기자의 역할은 추도사 낭독으로 정해졌다. 영정 사진 밑으로 정갈하게 차려진 장례용품이 놓이기 시작했다. 과일, 지방, 향…. 장례를 준비하시는 분들 입장에서도 개인적으로 모르는 분들일 텐데도 엄숙하게 준비하시는 모습이었다.
영정 앞에 놓인 장례용품. 고인의 개인정보가 드러날 부분은 편집 처리하였다. ⓒ정지영
영정 앞에 놓인 장례용품. 고인의 개인정보가 드러날 부분은 편집 처리하였다. ⓒ정지영

일찍 도착하여 다른 봉사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놀란 점은 무연고 장례의 대상이 흔히 생각하는 독거노인 어르신들만이 아니라 젊은층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열심히 살아가던 사람이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고 친족이 없는 등의 사유로 무연고 장례를 치르게 된 사례도 있었다. 이런 분들이 과연 ‘남’일까 하는 생각이 들며 공영장례의 필요성을 절감한 순간이었다.

이들의 존엄한 마지막은 법적으로도 명시된 사항이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제12조(무연고 시신 등의 처리)에 따르면 무연고 시신은 조례로 정하는 바에 따라 장례의식을 행하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이 경우 장례의식 등 최소한의 존엄이 보장되도록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장례비용 등을 지원할 수 있다.

참고로 서울시 공영장례 지원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원대상 : 무연고 사망자, 기초생활수급자(무연고사망자), 유가족이 시신 인수를 거부하는 경우 등 ▴지원방법 : 무연고 사망자 처리 계약 의전업체를 통해 지원 ▴지원내용 : 염, 수의, 입관, 운구, 화장, 봉안, 장례의식 등 일련의 절차
공간이 많이 남은 휴게실 안에서 고인의 화장 진행 상태를 알리는 화면이 나오고 있다. ⓒ정지영
공간이 많이 남은 휴게실 안에서 고인의 화장 진행 상태를 알리는 화면이 나오고 있다. ⓒ정지영

생전에 한 번도 뵙지 못했지만 분명 우리의 이웃이었을 고인께 인사를 드리고 헌화, 조사 낭독을 마친 뒤 고인을 모시고 화로로 향했다. 지방과 영정을 든 봉사자(대리 상주)를 따라서 화장을 하러 가는 길에는 일반 장례식을 치르는 다른 유가족들도 늘어서 있었다. 많은 유가족들이 눈물로 배웅하는 다른 고인들 사이에서, 오늘 모시는 고인이 우리로 인해 외롭지 않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닫히는 화로를 바라보며 허리를 숙였다.

고인의 화장이 이뤄지는 동안, 그리다 빈소에서는 봉사자들의 장례 염불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늘 불교식으로 종교 예식이 치러지는 것은 아니고, 천주교·불교·기독교 봉사자들이 돌아가면서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신다고 했다. 염불을 뒤로하고 지인이 아무도 오지 않은 고인의 이름으로 마련된 휴게실에 모여 먹먹한 마음을 나눴다.
유택동산 이용 안내에 대한 방송이 흘러나온다. 고인에 대한 예의로 유택동산에 모셔지는 고인의 모습은 촬영하지 않았다. ⓒ정지영
유택동산 이용 안내에 대한 방송이 흘러나온다. 고인에 대한 예의로 유택동산에 모셔지는 고인의 모습은 촬영하지 않았다. ⓒ정지영

기다림의 시간이 끝나고 마지막 여행을 떠날 준비를 마친 고인을 다시 모시러 갈 차례(수골)이다. 유골이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고인을 직접 뵙는 시간으로, 작은 상자 안에 들어가는 고인을 보며 삶에 남겨진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유골을 인수하러 온 이가 없는 고인을 유택동산에 보내드리고 지방을 태우면 봉사자들의 역할은 끝이 난다.

공영장례 봉사는 가지고 있는 종교에 상관없이 지원할 수 있다. 절이 아니라 묵념으로 고인에게 예를 갖추는 것도 가능하고, 만약 대리 상주나 조사 낭독을 할 봉사자와 종교 예식 봉사자들의 종교가 맞지 않는다면 방해되지 않게 잠시 자리를 비킬 수 있다. 현재 공영장례 봉사 신청은 1365자원봉사 포털을 통해서 지원받고 있으며, 장례 절차에 대해 잘 모르는 청년층이라도 숙련된 장례지도사가 함께하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도울 수 있다.

공영장례 봉사자 활동내용은 ▴무연고사망자를 위한 공영장례 예식의 대리 상주 및 조사 낭독, ▴화장장으로 들어가는 고인의 시신 운구, ▴무연고사망자 화장 종료 후 유골함 운구 등이다.
유족의 슬픔에 애도의 뜻을 표한다는 문구가 들어서는 길에 적혀 있다. ⓒ정지영
'유족의 슬픔에 애도의 뜻을 표한다'는 문구가 들어서는 길에 적혀 있다. ⓒ정지영

늘어나는 화장 수요를 대응하기 위해 서울시에서는 시립 화장장 운영 인력을 증원하고 화장장 운영 시간을 연장했다. 특히 시립승화원에는 2023년 화장시간 단축에 효과가 있는 ‘스마트 화장로’가 시범 도입되었다. 이 스마트 화장로를 점차 확대하여 2026년까지 일 평균 화장 공급을 190건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처음 이런 소식을 접했을 때는 사실 잘 와닿지 않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공영장례를 치르기까지 한 달여(상황에 따라 더 늘어나는 경우도 많다)를 기다린 고인을 만나고 생각이 달라졌다. 나를 비롯하여 서울에 살고 있는 모든 이웃들 역시, 수많은 사람 사이에 둘러싸여 지내는 서울 한가운데에서 외롭게 혹은 오랜 기다림을 거쳐 생을 떠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한 ‘사람’으로서 마지막 가는 길이 존엄하기 위해 이런 노력들이 뒤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하루였다.

서울시립승화원

○ 위치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통일로 504
홈페이지

시민기자 정지영

알고 있는 서울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시민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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