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봄을 기다리며, 전태일기념관
STOCKZ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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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6 13:00
배송 시간에 쫓겨 화장실 대신 페트병에 소변을 보거나, 집안 사정으로 결근을 하면 15만 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또한, 개인사업자라는 신분 때문에 길에서 택배 강도를 만나도 모든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한다. 합법적인 착취를 당하는 노동자의 현실을 조명한 영화 <미안해요 리키>이야기다. 노동자의 삶을 조명하는 켄 로치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마음이 불편했다. 생계를 위한 노동현실과 그에 따른 환경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모르겠다.올해는 한국 노동자를 대표하는 청년 전태일의 사망 51주기가 되는 해다.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사람 중심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그의 희생으로 노동환경은 이전보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은 먼 느낌이다.가정의 달이 시작되는 5월의 첫날은 근로자의 날이기도 하다. 2019년, 노동절을 하루 앞두고 마지막 분신항거로 새로운 시대를 연 전태일의 꿈을 잇고자 청계천에 전태일기념관이 들어선 지 2년이 됐다. 전태일 사망 51주기가 되는 근로자의 날, 전태일기념관을 찾았다. 지하철 2호선 을지로3가역 2번 출구로 향하는 길, 디지털 전시관에서는 지역의 특성을 살려 각종 공구나 전기 소품 등을 볼 수 있었다. 도보로 5분 정도 걸으니 청계천이 보였다. 바로 옆 외벽에 근로감독관에게 보낸 진정서를 새겨 넣은 6층짜리 전태일기념관은 쉽게 눈에 들어왔다. 입구에 들어서 체온을 체크하고, QR코드를 찍은 후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재봉틀이었다. 노동 착취의 역사가 재봉틀 하나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 조금은 외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전태일의 어린시절’과 ‘전태일의 눈’, ‘전태일의 실천’과 ‘전태일의 꿈’으로 카테고리를 나눈 3층 상설전시관에 올랐다. 어린 시절부터 17살에 평화시장 봉제 노동자의 삶을 살기까지의 전태일의 삶은 평탄치 않았다. 전시관은 허리조차 펴기 힘든 좁고 어두운 그 시절의 다락 작업장을 재현했다. 1960~1970년대 평화시장의 어린 여공들은 하루 15시간 넘게 쭈그리고 앉아 ‘미싱’을 돌렸고, 전태일은 버스비를 털어 배곯는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주고, 2시간 넘게 쌍문동의 집으로 걸어가곤 했다. 좁은 작업장에서 밤샘 야간작업에 시달리는 열악한 작업 환경으로 대부분의 노동자가 질병에 시달렸다. 미싱사 여공이 입에서 핏덩이를 통해내는 것을 보고서 노동운동에 뛰어든 전태일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단사 친목모임 '바보회'를 만든다. 인간적인 대접을 받을 권리가 있는데도 바보같이 부당한 학대를 받았다는 의미에서다. 이후 그는 노동실태를 조사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노동청에 진정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그 시절 노동문제에 눈을 뜨고 행동하며 남긴 글과 유품, 전태일 사후 어머니 이소선 여사와 동료들의 투쟁 기록들이 전시장을 채우고 있었다. 아울러, 전태일은 숨을 거두기 전, 어머니에게 자신이 못다 이룬 일을 이루어 달라 부탁했다. 이소선 어머니는 그의 뜻을 이어 곧바로 청계피복노동조합을 창립했다. 학생, 종교계 및 사회도 노동문제에 대해 각성하며 다양한 방법으로 연대하기 시작했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이소선 어머니와 노동자들은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투쟁하였고,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조의 합법화를 이루어 내는 과정을 담았다.전태일은 공책 7권 분량의 일기를 남겼고, 일기는 고 조영래 변호사가 쓴 <전태일 평전>의 밑바탕이 된다. 당시 조영래는 전국민주청년연맹 사건의 관련자로 수배되면서 6년간 도피생활을 한다. 그중 3년간 전태일의 어머니 이 여사를 만나 그와 함께한 봉제공장 노동자들을 위해 청계천 일대를 누빈다. 그렇게 전태일의 일생을 정리한 조영래는 엄혹한 군부 독재로 인해 국내가 아닌 일본에서 1978년 '불꽃이여! 나를 태워라'라는 이름의 책을 출간한다. 국내에서는 1983년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전태일 평전'으로 출판됐지만, 원고 내용이 수정된 책은 저자도 밝힐 수 없었고, 출판되자마자 당국으로부터 즉각 판매금지 조치를 당하기도 했다. 서두에 언급한 영화 <미안해요 리키>의 원제는 ‘Sorry, We Missed You’로, 택배기사가 수취인이 부재 중일 때 남기는 표현이라고 한다. ‘미안합니다, 우리가 당신을 놓쳤네요.’ 이 메시지는 현실에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스물두 살 젊은 청년 전태일은 죽음으로 노동환경의 변화를 이끌었지만, 아직 과로로 죽어 나가는 노동자와 열악한 작업환경으로 병에 걸리는 근로자가 존재한다. 우리 사회는 그 사실을 기억하고 그 아픔에 공감해야 한다.부당한 노동착취를 가하는 노동환경의 변화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노동인권교육이다. 이에 전태일기념관에서는 올해 11월 15일까지 노동인권교육을 신청해 받을 수 있다.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현장, 노동인권교육이 필요한 곳으로 전태일기념관이 찾아간다. 이 땅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이 교육을 통해 합당한 노동존중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무게를 견디며 노동을 이어나가는 모두에게 더 나은 환경이 주어지기를 말이다.■ 전태일기념관○ 위치 :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105
○ 운영시간 : 10:00 ~ 18:00
○ 휴무일 : 매주 월요일
○ 홈페이지 : https://www.taeil.org/
○ 문의 : 02-318-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