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의정부 유적 발굴 현장…시간의 결을 느끼다
STOCKZ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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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5 09:17
6월 22일 오전 10시 15분에 교보빌딩과 디타워 사이 벤치에서 '의정부 유적지 발굴현장' 공개 참관에 허락된 신청자들이 모였다. 명단 확인과 체온 측정을 마치고 기념품을 제공받은 후 궁궐전문가 홍순민 명지대 교수의 안내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10시 30분이 되자, 홍교수가 해설을 시작했다. 본격적인 의정부 유적지 탐방에 앞서 육조거리 주변 문화유적지부터 살펴봤다. 첫 번째 역사적인 장소는 세종대로와 새문안로의 교차지점 가까이에 위치한 고종 어극 40년 칭경기념비전이었다. 홍교수는 칭경기념비전 앞에서 광화문을 바라보라고 했다. 육조거리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칭한 도로명이라, ‘광화문 앞길’, ‘광화문 전로’라고 부르는 게 낫다고 설명했다. 또 경복궁 뒤로 보이는 산이 무슨 산인지 묻고, 누군가 북악산이라고 답하자 백악산이라고 부르라고 하며, 백악 뒤로 보이는 보현봉도 함께 알아두라고 했다. 또한 백악을 뒤로 둔 광화문의 위용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고 했다.운종가는 조선 시대 한양 도성에 있었던 거리 이름으로 지금의 종로 신문로를 합한 곳이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운종가의 뜻은 많은 사람이 구름같이 모였다 흩어지는 거리라는 뜻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조선시대 종로 일대는 시전 설치, 육의전을 비롯한 많은 점포가 집중적으로 발달돼 있어 사람이 모여들었으므로 운종가라 불리었다고 했다. 육조대로는 의정부 이외도 삼군부, 육조를 비롯한 조선시대에 주요 관청이 늘어섰던 곳이다. 지금도 종로구청 주변은 관청가이다. 일제강점기와 산업화를 거치면서 육조 관청 터는 대형 고층 건물들이 들어서 광화문 네거리의 풍경은 물론 그 밑의 유구들을 발굴할 수 없어 안타깝다고 했다. 하지만 의정부 터는 1865년 중건 이후 일제강점기 당시 경기도청 등이 들어섰지만, 지하·중층 건물 등의 신축이 거의 없이 지하 유구 보존상태가 양호할 것으로 판단된다. 홍교수는 땅속에 과거의 흔적들이 남아 이렇게 시간의 켜가 되어있다고 힘주어 말씀하셨다.의정부 이조 자리에 서울역사박물관이 들어섰고 그곳에서 의정부터가 제일 잘 보인다고 했다. 홍교수는 서울역사박물관 옥상정원에 올라가 강의를 이어갔다. 경복궁을 둘러싼 주변 요소들을 배경으로 의정부 조성부터 소멸까지(1400~1907년)의 전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설명했다. 경복궁의 좌측 백악산과 휴암(鵂岩) 사이에서 흘러내린 삼청동천과 오른쪽의 백악산과 인왕산 사이에서 흘러내린 백운동천이 흘러 청계천으로 이어지는 물길 이야기를 하며 산과 물의 관계를 잘 읽으면 지형이 보인다면서 지형을 존중하면서 자연조건을 고려해 도시를 살리자는 말씀을 덧붙였다. 의정부 발굴 현장으로 내려가 현장에서 4년간의 발굴조사를 이끌어왔던 학예연구사의 발굴이야기와 문화재 보존처리 및 약품과 재료, 조사기구 등 보존처리 과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이번 의정부 터 탐방은 의정부 뿐 아니라 주변에 위치한 중학천, 청진동, 육조거리 등을 탐방하며 도심 속 역사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였고, 도심과 역사유적이 공존하는 현장을 생생하게 보고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