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심(史心) 가득한 역사 이야기…경복궁과 근정전
STOCKZ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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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2 14:25
내 손안에 서울 ‘전문칼럼’ 코너에 새로운 필진이 합류합니다. 오늘부터 조선시대 연구 권위자로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쓴 건국대학교 사학과 신병주 교수가 격주 수요일(발행일 기준)마다 “사심(史心) 가득한 역사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오늘 그 첫 번째 시간으로,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궁인 경복궁에 관한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께 들려드릴까 해요. 켜켜이 쌓인 역사 이야기를 하나씩 하나씩 짚어가다 보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큰 깨달음을 줄 것입니다. 앞으로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신병주 교수의 사심(史心) 가득한 역사 이야기 (1) 경복궁과 근정전, 이름에 담긴 뜻1392년 조선 건국 후 가장 의미가 있는 장면 중의 하나는 1394년 10월 한양으로 천도를 단행한 것이다. 500년 가까이 고려의 수도로서 기능을 했던 개성을 대체하는 수도를 새로 정한 것은 새로운 왕조의 지향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천도 1년 후인 1395년(태조 4) 마침내 약 10개월 간의 공사 끝에 궁궐이 완성되었다. 의 1395년(태조 3) 9월 29일 기록에는 새 궁궐이 완성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새 궁궐은 연침(燕寢)이 7간이다. 동서이방(東西耳房)이 각각 2간씩이며, 북쪽으로 뚫린 행랑이 7간, 북쪽 행랑이 25간이다. 동쪽 구석에 연달아 있는 것이 3간, 서쪽에 연달아 있는 누방(樓房)이 5간이고, 남쪽으로 뚫린 행랑이 5간, 동쪽의 소침(小寢)이 3간이다. ... 정전은 5간으로 조회를 받는 곳으로 보평청의 남쪽에 있다. 상하층의 월대가 있는데, 들어가는 깊이가 50척, 넓이가 1백 12척 5촌, 동계(東階), 서계(西階), 북계(北階)의 넓이가 각각 15척이다. ... 수라간(水剌間) 4간과 동루(東樓) 3간은 상하층이 있다. 그 북쪽 행랑 19간은 정전의 북쪽 행랑 동쪽에 닿아서 내전의 동쪽 행랑과 연했으며, 그 남쪽 9간은 전문의 동각루(東角樓)에 닿았다. ... ”고 하여, 처음 경복궁이 완성되었을 때의 침전과 정전의 규모, 수라간, 동서의 행랑 모습까지 알 수 있게 하고 있다. 경복궁의 전체 규모는 755칸 정도였는데, 1868년 흥선대원군이 중건한 경복궁의 규모라 7,200여 간임을 고려하면 처음 출발한 경복궁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음을 알 수가 있다. 성리학 이념을 담아 건국한 왕조였던 만큼 왕의 공간에서부터 모범적으로 검소와 절약을 실천해 나가야 한다는 정신을 담았기 때문이다. 궁궐의 이름을 짓는 과정도 흥미롭다. 1395년 10월 7일 태조는 최고의 참모 정도전에게 “그대는 마땅히 궁전의 이름을 빨리 지어서 나라와 더불어 한없이 아름답게 하라.”며 새 궁궐의 이름을 지을 것을 명하였고, 정도전은 의 주아(周雅) 편에 있는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는 영원토록 그대의 경복(景福:크나큰 복)을 모시리라.(旣醉以酒 旣飽以德 君子萬年 介爾景福)’라는 구절을 떠올렸다. 태조가 궁궐에서 잔치를 베풀면서 술에 취한 모습과 덕으로 정치를 해야 한다는 점을 반영한 이름이었다. 정도전은 이어서, 의 ‘백성을 중히 여기고 건축을 삼가라.’고 한 구절을 인용한 후, 왕은 넓은 방에서 한가히 거처할 때에는 빈한한 선비를 도울 생각을 하고, 전각에 서늘한 바람이 불게 되면 맑고 그늘진 것을 생각해 본 뒤에 거의 만백성을 봉양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였다. 정도전은 ‘경복궁’이라는 궁궐 이름과 함께, 왕이 무엇보다 백성을 위해서 부지런히 일해야 함을 강조한 ‘근정전(勤政殿)’, 생각하고 생각해서 정치를 해야 한다는 뜻의 ‘사정전(思政殿)’, 사람의 오복(五福) 중에서 건강과 평안을 상징하는 강녕의 이념을 담은 ‘강녕전(康寧殿)’ 등의 이름도 지었다. 전각 이름 하나하나에 왕도정치와 민본정치를 실천하려는 조선왕조의 이념이 잘 구현된 궁궐 경복궁. 전각의 이름에 담겨 있는 의미들을 기억하고 이곳을 찾는다면, 그 즐거움은 더욱 커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