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재산 독립 위해 기부한 6형제…'이회영 기념관'에 가다
STOCKZ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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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6 13:40
'남산예장공원'과 함께 우당 이회영 기념관 9일 정식 개장“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애국가 2절에 등장하는 ‘남산 위에 저 소나무’가 남산예장공원 입구에 심어졌다. 2017년 3월 착공해 3년 4개월 간의 공사를 마친 남산예장공원이 지난 9일 정식 개장했다. 조선시대 군사들의 무예훈련장이었던 남산 예장자락에는 많은 역사가 중첩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통감부와 통감관저가 들어섰고, 5.16쿠데타 이후에는 중앙정보부가 있었다. 일반 시민들은 발걸음도 하기 힘든 장소였다. 이제 공원으로 조성하면서 발굴된 조선총독부 관사 터가 지상에 보전되고, 중앙정보부 6국 남산별관의 기억도 ‘기억6’이라는 공간으로 새롭게 재현되었다.삼엄한 국가권력이 시민들의 출입을 막았던 장소에 이제는 남산을 상징하는 소나무가 심어지고 남산까지 이어지는 생태교량과 샛자락 쉼터 등이 조성돼 시민들을 위한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공원 지하에는 녹색순환버스 환승센터와 관광버스 주차장, 그리고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 기념관’도 들어섰다. 지난해 1월부터 운행을 시작한 녹색순환버스 가운데 02번과 04번이 남산에 진입한다. 지하철 4호선 명동역 1번 출구에서 남산예장공원은 아주 가깝다. 남산예장공원에 '이회영기념관' 들어서다!우당 이회영과 그 형제들은 말 그대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이라고 할 만하다. ‘조선 최고의 가문, 조선 최고의 부자, 조선 최고의 형제’라 불리던 이들은 1910년 경술국치 후 전 재산을 처분해 서간도로 이주했다. 이듬해 설립한 신흥무관학교는 폐교할 때까지 3,500명의 졸업생을 냈는데, 대부분이 독립군 전사나 비밀결사대원으로 일제와 싸웠다. 봉오동, 청산리 전투의 주축이었던 건 두말할 것도 없다. 이회영기념관은 신흥무관학교 개교일인 6월 10일을 기념해 문을 열었다. 모든 재산을 독립운동에 쏟아 부은 이회영의 형제들은 다섯째 이시영만 빼고는 참담한 죽음을 겪었다. 이회영이 밀정들의 밀고로 체포돼 여순감옥에서 고문사하고, 가장 많은 재산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진 둘째 이석영은 굶주림 끝에 세상을 떠났다. 이시영만이 해방된 조국에 돌아와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을 지냈다.공원 지하 공간에 조성된 이회영기념관에서는 ‘난잎으로 칼을 얻다’ 상설전시가 열린다. 후손이 기증한 유물 42점도 전시되고 있는데, 이회영의 아내 이은숙이 쓴 ‘서간도시종기’ 육필 원고도 그 중 하나다. 일제강점기로부터 50여 년을 쓴 독립운동가 아내의 일기는 우리 역사 그 자체다. 가난에 몰리던 이회영은 묵란을 팔아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회영의 묵란은 추사 김정희로부터 흥선대원군 이하응을 이어 한국식 묵란 화풍의 한 전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기념관에서는 이회영 6형제의 노정과 신흥무관학교 설립, 무장투쟁 과정 등을 그린 ‘난잎으로 칼을 얻다’ 영상도 상영되고 있다. 또한 개관특별전으로 ‘체코무기 특별전’도 열린다. 100년 전 독립군은 체코 군단으로부터 무기를 헐값에 사들여 봉오동·청산리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는데 당시 사용했던 소총과 권총 등 무기류와 지도, 군복 등 28점이 2023년 12월까지 전시된다. 잊어서는 안 될 역사가 남산예장공원에 있다. 고마운 일과 부끄러운 일을 기억하는 것은 개인으로서도, 사회 공동체에서도 중요한 일이다. 이제는 남산에서 불어오는 바람결에 소나무향이 스치는 공원에서 지나간 역사지만 되새겨야 할 이야기들과 만나보는 것도 좋겠다.■ 남산예장공원○ 위치: 중구 예장동 4-1 일대 (남산예장자락)○ 가는법 : 지하철 명동역 1번 출구에서 도보 5분- 녹색순환버스 02, 04번 ■ 이회영기념관○ 위치 :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26길 36○ 운영시간: 화~일 10:00~18:00(매주 월요일, 설날·추석연휴 휴관)○ 문의: 02-755-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