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옆 동네 원서동 산책코스 "걸으면 보이는 것들"
STOCKZ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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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8 14:17
궁궐의 담을 따라 길게 형성된 동네가 있다. 종로구 원서동이다. ‘창덕궁 후원의 서쪽’이란 뜻을 지닌 원서동은 조선시대 궁중에서 일하는 하급 관리들이 집성촌을 이루던 곳이라고 한다. 70~80년대에 도시 이주민의 급증으로 다세대 주택에 밀려난 한옥은 1983년 북촌 보존 계획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현재는 한옥과 더불어 한옥을 개조한 카페나 공방, 편집 숍들이 모여 있는 종로의 명소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궁의 담장 넘어 풍경이 궁금해 길을 나섰다. 버스를 타고 창덕궁 돈화문국악당 역에서 하차했다. 창덕궁을 중심으로 왼쪽 길로 걸으면 원서동이라고 지도는 가리키고 있었다. 원서동 초입의 느낌은 시원스럽게 보이는 하늘이었다. 탁 트인 하늘 아래 낮고 가지런한 한옥과 더불어 그 사이사이를 채우는 감각적인 건물의 공방이나 카페들이 분위기를 더욱 운치 있게 만들었다. 원서동 거리 곳곳에서 한옥 명소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볼 수 있었던 건물은 무료로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인사미술공간'이다. 맞은편은 원서동을 가로지르는 종로01번 마을버스의 정류장이다. 궁의 담을 배경으로 운동기구와 벤치 등을 조성해 이 역시 특별해 보였다. 바로 옆에는 어르신 무더위 쉼터도 볼 수 있었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한옥인 '은덕문화원'의 카페 내부에서는 직장인들을 위한 문화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클래식 음악 감상을 매주 수요일 12시~1시 사이에 운영하고 있으며, 한옥명상은 화·수·목·금요일 12시~1시에, 이야기와 해설이 있는 LP 음악 감상 시간이 둘째·넷째 금요일 오후 2시~4시에 펼쳐진다. 모든 프로그램은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며, 개인 컵 지참 시 음료도 제공한다. 단 사전 예약 후 입장이 가능하다. 원서동 길에서 볼 수 있는 명소는 이뿐 아니다. '궁중음식연구원'은 1971년에 조선왕조 궁중음식이 중요 무형문화재 제38호로 지정되자 이를 보급하고 계승하기 위해 설립됐다. 아울러, 주위에는 궁중음식연구원의 또 다른 공간인 음식고전 연구소, '선일당'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유일하게 문을 개방하고 있는 한옥인 '전통홍염공방'은 개방 화장실이 있다고 표시된 장소였다. '서울공공한옥'이란 명패가 걸려 있는 이곳은 서울에서 한옥을 매입해 한옥에 맞는 공방이나 장인들의 조합원들에게 임대하는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마을버스 종로01번이 지나는 명소 중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곳이 '고희동 가옥'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인 고희동 화백은 한국 최초의 미술유학생이었다. 일본에 가서 서양화를 공부, 귀국하여 휘문·보성 등의 학교에서 서양화를 가르쳤다. 대한미술협회장, 대한민국예술원장 등을 지냈으며 1949년 서울시문화상을 받았다. 현재는 고희동 미술관으로 불리는 고희동 가옥은 등록문화재 제84호로 등록되어 있는 곳이었다. 조각상이 있는 정원을 지나 비치된 실내화로 갈아 신고 입장이 가능했다. 이제는 필수가 된 발열체크 및 QR체크의 절차를 거쳐야 했다. 고희동 화백은 1918년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직접 설계한 한옥에서 41년 간 생활했다고 한다. 때문인지 고희동 가옥은 일본식 건물의 느낌이 곁들어진 한옥이었다. 그럼에도 그 느낌이 그리 낯설지 않았다. 입구에 고희동 화백의 초상화가 전시되어 있는 방과 두 개의 전시관 그리고 그 당시 생활 모습을 재현해 놓은 방을 볼 수 있다. 또한, 관람객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미술관을 나와 원서동 골목의 담장 끝에 다다르자 옛 빨래터가 보였다. '원서동 빨래터'는 청계천과 더불어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빨래터라고 한다. 궁인뿐 아니라 일반 백성도 사용했다는 빨래터는 그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날씨가 오랜 시간 가물어도 창덕궁에서 흘러내리는 수량이 일정량을 유지한다고 했다. 오래전 선조들이 이곳에 앉아 손 빨래를 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기분이 오묘했다. 빨래터의 왼편 오르막으로 '백홍범 가옥'이라는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서울민속문화재 제 3호인 이 가옥은 1910년경 완성돼 상궁이 살았었다고 전해진다. 이곳은 전형적인 한옥과 1930년대 이후 근대적인 건축 재료를 활용한 과도기적 형태의 집이라고 한다. 하지만, 현재는 한샘 기업의 연구소로 쓰이고 있어 건물 내부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서울 종로구 북촌 한옥마을과 창덕궁 사이에 위치한 원서동은 조선시대 한옥부터 현재의 공방까지 모든 시간이 어우러지고 있었다. 일찌감치 고개를 넘어온 사람들이 소박하게 자리 잡은 한옥 주위로 여러 상가가 생겨났지만, 궁궐 담을 넘은 새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또한,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과 돌담에 눈이 쌓이는 겨울의 풍경이 더욱 기대되는 동네이기도 했다. 길고 긴 담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원서동의 고전적인 분위기가 좋았다. 더불어 명소와 골목 사이 존재하는 미용실과 마트가 한옥을 삶의 터전으로 뿌리내린 이들의 일상이 흐르는 곳임을 전하고 있었다. 바란다면 유서 깊은 ‘올드 타운’으로 주목받고 있는 한옥이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존되기를, 아울러 그들의 일상 역시 평화롭게 유지되는 궁궐 옆의 동네가 됐으면 좋겠다.